Photo stories/여행이야기

[X-PRO2] 수원 화성 성곽길 걷기

HJ Photograph 2019. 11. 7. 18:20

 

조선 성곽 건축의 꽃, 수원화성

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1796년 9월 완공된 성입니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은 축조이후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성곽의 일부가 파손·손실되었으나 1975~1979년까지 축성직후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 의거하여 대부분 축성 당시 모습대로 보수·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10, 은구 2 총 49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시설물 일부가 소멸되었다.

(현재 소멸된 시설물 :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 / 남수문 2012년 6월 복원 완료)

수원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2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성벽은 외측만 쌓아올리고 내측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우는 외축내탁의 축성술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성곽을 만들었으며, 또한 수원화성은 철학적 논쟁 대신에 백성의 현실생활속에서 학문의 실천과제를 찾으려고 노력한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벽돌과 석재를 혼용한 축성법, 현안ㆍ누조의 고안, 거중기의 발명, 목재와 벽돌의 조화를 이룬 축성방법 등은 동양성곽 축성술의 결정체로서 희대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당대학자들이 충분한 연구와 치밀한 계획에 의해 동서양 축성술을 집약하여 축성하였기 때문에 그 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 방화수류정(보물 제1709호) 등이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원문화재단 https://www.swcf.or.kr/?p=58#url

 

 

 

 

후지필름 X-PR02 그라파이트 에디션 구입한 기념으로 수원화성에 다녀왔습니다.

주차는 새로 생긴 연무동 공영 주차장을 이용했으며

"수원 문화재 야행" 행사 마지막 날로 주차비는 무료였습니다.

 

 

 

 

 

 

 

 

주차장 중앙 출입구로 나오면 수원 화성으로 올라갈 수 있는 북암문이 바로 나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수원 화성을 일주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운 마음으로 화성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암문(暗門)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화성의 5개의 암문 중에서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동북포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으며 1796년(정조 20) 3월 27일 완공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북암문 [北暗門] (수원화성 테마관)

 

 

 

 

 

 

북암문으로 올라오면 우측에 동북포루가 보입니다.

산책로는 사진과 같이 콘크리트로 잘 포장되어있습니다.

 

 

 

 

 

 

 

 

동북포루입니다.

 

 

포루(舖樓)

포루(舖樓)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 곳이다. 동북포루는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로 1796년(정조 20) 5월 15일 완공되었다. 이곳의 지형은 주변보다 높아서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바라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북포루 [東北舖樓] (수원화성 테마관)

 

 

 

 

 

 

북암문으로 나와서 방화수류정을 촬영해봤습니다.

휴일이라서인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 18) 10월 19일 완공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방화수류정 [訪華隨柳亭] (수원화성 테마관)

 

 

 

 

 

 

사람들을 피해서 기념사진 한장 남기고 야경 촬영지로 유명한 북수문(화홍문)으로 향했습니다.

 

 

 

 

 

 

 

 

 

 

 

 

 

 

 

 

 

화홍문(華虹門)

화성에는 수원천이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데 성의 연결 부분에는 수문을 설치하여 북쪽에는 북수문, 남쪽에는 남수문을 두었다. 화홍문은 화성의 북수문으로 7개의 무지개 모양의 수문이 설치되어 있다. 특징이라면 7개의 수문의 크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운데 수문이 좌우의 수문보다 넓고 크게 설치되어 우량(雨量)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화홍문 동쪽 언덕에는 화려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방화수류정(訪華隨柳亭)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홍문(華虹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다시 성곽길로 올라왔습니다.

이곳은 산책로가 흙길로 되어있어서 걷기에 더 좋았습니다.

 

 

 

 

 

 

 

 

산책로는 마을과 인접해있고 주변은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사진의 북동포루를 지나 북동적대에 도착했습니다.

 

 

 

 

 

 

 

 

적대(敵臺)

적대는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성문 좌우 옆에 있는 치성 위에 세운 시설이다. 4대문 중 장안문과 팔달문 양쪽에만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동쪽에 위치한 북동적대의 높이는 성벽과 같다. 치성 밖 아래쪽에 3개의 현안(위아래로 길게 낸 구멍)을 만들어 성 아래 가까이 다가온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북동적대 [北東敵臺] (수원화성 테마관)

 

 

 

 

 

 

 

 

장안문(長安門)은 조선시대 화성의 북문으로 건립된 중층누문(重層樓門)입니다.

 

 

누문

중층 누각건물 아래 설치한 출입문이다. 경복궁의 중문인 근정문, 창경궁의 홍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등이 누문(樓門)이다. 서원에서는 정문인 삼문 대신에 유식(遊息)공간의 중심건물인 누각 아래에 정문을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사찰에서는 대웅전 앞에 누각을 두는 것이 보통이고 누각 아래를 통과하여 출입하도록 하였다. 봉정사 극락전 앞의 만세루나 부석사 무량수전 앞의 안양루 등이 대표적인 누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누문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2007. 4. 10., 김왕직)

 

 

 

 

 

장안문(長安門)

하나의 홍예문(虹霓門)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바깥 쪽으로 원형 옹성(甕城)을 갖추었다. 홍예 위로 4개의 누조(漏槽)를 설치하고, 성벽 위에는 안팎에 총구(銃口)를 갖춘 여장(女墻)을 쌓았다. 홍예 위에는 오성지(五星池)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5개의 구멍을 갖춘 큰 물통으로, 적이 성문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문 좌우로 성벽이 이어지며, 문에서 53보(步) 되는 곳에 각각 적대(敵臺)가 마련되어 있다.

이 문은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성문 형태를 취하였고, 규모나 구조는 조선 초기에 세워진 서울 숭례문과 매우 비슷한, 당당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숭례문에 비해 좀더 새로운 것은 옹성, 적대와 같은 방어 시설을 갖춘 것이 특색이다.

 

1920년대 수원시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리고, 1950년 6·25전쟁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안문 [長安門] (두산백과)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본 것보다 직접 들어가서 본 장안문은 생각보다 더 크고 더 웅장한 느낌이었습니다.

 

 

 

 

 

 

 

 

 

 

 

 

 

 

 

 

 

 

 

 

 

 

 

 

 

 

 

 

 

 

 

 

 

 

 

 

 

 

 

 

 

 

 

 

장안문 지나서 화서문 전까지 성곽 안쪽은 사진과 같이 카페거리(?)가 형성되어 있고

바깥쪽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화서문을 지나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서북각루까지 억새밭이 형성되어 있어서 사진 찍는 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화서문(水原 華西門 )

보물 제403호. 문루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단층 팔작지붕.

1796년(정조 20)에 건조되었으며 좌우로 성벽에 이어지는 석축 부분에 홍예문을 열고 그 위에 단층의 문루를 세웠다. 그리고 전면에는 또 반원형의 전(塼)으로 쌓은 옹성(甕城)을 두었다.

건축의 계통은 전형적인 2익공(翼工)집으로 외목도리를 받쳤으며 창방(昌枋) 위에는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또 대량(大樑)에서 측면 기둥에 걸쳐 충량(衝樑)이 있으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한국에 있는 다른 성곽건축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구조도 특수하며 이것이 있음으로써 부근 일대의 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서문 [水原 華西門] (두산백과)

 

 

 

 

 

 

 

 

 

 

 

 

 

 

 

 

 

 

 

 

 

 

 

각루(角樓)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설이다.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지휘소 역할도 하였다. 서북각루는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북각루 [西北角樓] (수원화성 테마관)

 

 

 

 

 

 

 

 

 

 

 

 

 

 

 

 

 

서북각루에서 서대장대로 향하는 길입니다.

산길 코스라 힘들어해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서장대(화성장대)에 도착했습니다.

수원 화성 중 가장 힘든 구간이지만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난이도(?)였습니다.

 

 

서장대(華城西將臺)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서 상층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의 모임지붕으로 되어 있다. 뒤편에는 8면의 노대(弩臺: 서노대)를 세웠는데, 이곳은 쇠뇌를 쏘는 군사인 노수(弩手)가 머물던 곳이다. 또한 현재는 복원이 안됐으나 후당(後堂) 3칸을 지었다. 서쪽 두 칸은 온돌이고, 동쪽 1칸은 판자를 깔았다. 모두 창과 분합문을 설치하고 단청을 하였다.

이곳은 성의 안팎이 모두 한눈에 들어와, 화성 성곽 일대는 물론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백 리 안쪽의 모든 동정을 파악할 수 있다. 1794년(정조 18) 8월 11일 터 닦기 공사에 착수하였고, 9월 16일에 상량하고, 9월 29일에 완공되었다. 정조가 '화성장대(華城將臺)'란 편액을 직접 썼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장대 [華城西將臺] (두산백과)

 

 

 

 

 

서장대에서 바라본 화성행궁과 수원의 전경입니다.

 

 

 

 

 

 

 

 

 

 

 

 

 

 

 

 

 

 

 

 

 

 

 

 

 

 

 

 

 

 

 

 

 

 

 

 

 

 

 

 

 

 

 

 

서남암문을 지나면 내리막 돌계단이 시작됩니다.

 

 

 

 

 

 

 

 

내려가면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 멀리 팔달문이 보이네요.^^

 

 

 

 

 

 

 

 

팔달문(水原 八達門)은 수원 성곽의 남문입니다.

 

 

 

 

 

 

 

 

팔달문(水原 八達門)

1964년 9월 3일 보물 제402호로 지정되었다.

1794년(정조 18) 세워졌으며 규모는 문루의 정면이 5칸, 측면이 2칸이고 양식은 중층 우진각지붕이다. 석축의 홍예문 위에 중층의 문루를 세웠는데 주위 4면에는 여장(女墻)을 돌리고, 전면에는 반월형으로 옹성(甕城)을 축조하였으며 한국의 성문 건축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형식을 모두 갖추었다.

문루 내부에는 중앙에 고주(高柱)를 한 줄로 배치하였는데 상하층 대량(大樑)은 전부 이 고주에 연결된다. 공포(栱包)는 상층이 내외 삼출목(三出目)이나 하층은 외이출목, 내삼출목이며 내부는 모두 초화문(草花文) 장식으로 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달문 [水原 八達門] (두산백과)

 

 

 

 

 

 

 

 

 

 

 

 

 

 

 

 

 

수원 영동 시장을 지나 남수문 위에서 촬영한 수원천 사진입니다.

 

 

남수문(南水門)

남수문은 수원천이 화홍문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와 성곽과 다시 만나는 지점에 만든 수문이다. 수원천 하류 수량증가에 대비하여 9개의 홍예수문으로 되어 있으며 수문 위에는 성밖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포사가 세워져 있어 비상시에는 군사들이 대기하거나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남수문 복원을 위해 지난 2004년 남수문터에 대한 발굴조사에 나섰고, 2012년 6월 복원을 완료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수문 [南水門] (수원화성 테마관)

 

 

 

 

 

 

 

 

 

 

 

 

 

 

봉돈(烽墩)

1796년 6월 17일 완성된 수원 화성 봉돈(烽墩)은 일반적인 봉수대(烽燧臺)가 주변을 잘 살필 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화성의 대표시설이다.

평상시 남쪽 첫 번째 화두(火竇: 횃불구멍)에서 횃불이나 연기를 올려 용인 석성산과 흥천대 봉화로 신호를 보낸다. 다른 4개의 횃불구멍은 긴급한 일이 없으면 올리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봉돈 [烽墩] (수원화성 테마관)

 

 

 

 

 

 

 

 

동이치 → 동포루 → 동일치 → 창룡문 → 동북노대를 지나왔고 저 멀리 동북공심돈이 보입니다.

 

 

 

 

 

 

 

 

 

 

 

 

 

 

 

 

 

성곽길 주변에 4가지 색의 깃발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깃발 색은 각각 방위를 상징하는 동물색이라고 합니다.

東方蒼龍(동방창룡) | 北方玄武(북방현무) | 西方白虎(서방백호) | 南方朱雀(남방주작)

 

 

 

 

 

 

 

 

수원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중 하나라 생각되는 동북공심돈입니다.

 

 

공심돈

공심돈은 성곽 주위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화성에는 서북공심돈·남공심돈·동북공심돈이 있다. 동북공심돈은 1796년(정조 20) 7월 19일 완성되었다. 형태는 커다란 둥근 원의 모습으로 화성 성곽내에서 가장 특징이 있는 건물의 하나이다.

동북공심돈 내부는 소라처럼 생긴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통해서 꼭대기에 오르게 되어 있어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수원문화재단 https://www.swcf.or.kr/?p=59&listGubun=list&viewMode=view&idx=29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외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 19) 7월 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 25일 완공되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이었기에 연무대(鍊武臺)라고 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 안을 살펴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장대 [東將臺, 鍊武臺] (수원화성 테마관)

 

 

 

 

 

 

 

 

 

 

 

 

 

 

 

 

 

 

 

 

 

 

 

 

 

 

처음 출발했던 동암문에 도착해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야간에도 산책할 수 있도록 성곽길에 조명이 들어오며

 

 

 

 

 

 

 

 

성곽에도 조명이 들어와 수원 화성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무동 공영 주차장의 모습입니다.

지하 주차장이며 지상엔 수원 화성과 연결되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주차장 중간쯤에 위치한 사진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수원 화성의 동암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수원 화성 성곽길을 일주하는데 약 3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다 돌아볼 계획은 아니었지만 아이들과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걷다가 힘들면 쉬어주고

또 매점과 시장을 지나갈 땐 간식도 먹으면서 걷다 보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수원 화성을 일주할 수 있었습니다.

 

 

 

 

 

 

 

 

[ X-Pro2 + XF23mmF2 그라파이트 에디션 ]

 

 

주차만 편하게 할 수 있다면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기 좋은 수원 화성 성곽길 산책 편을 마칩니다.

그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