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목포 여행 1.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한때 정치적 이슈(?)로 유명했던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다녀왔습니다.
가족과 함께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시기라 혼자만의 여행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무계획 여행으로
주차장만 검색 후 무작정 출발했던 짧았지만 즐거웠던 목포 여행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대한제국 개항기에 ‘목포 해관’ 설치에 따른 근대기 통상 항만의 역사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의 생활사적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소로서 근현대를 관통하는 목포의 역사 문화와 생활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보존과 활용할 가치가 우수한 지역이다."
[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
목적지인 목포 근대역사관 별관까지 약 4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목포 생각보다는 가까웠지만 그래도 머네요.^^;;
목포에 도착해서 확인한 날씨는 살짝 아쉽네요.^^;;
생활 속 거리두기 기간인 요즘은 주로 혼자서 사진을 촬영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혼자 촬영할 때의 준비물은 좋아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듣기 위한 아이폰 6 +와 에어팟
그리고 주력 렌즈 1~2개와 요즘 가장 중요한 마스크 등입니다.
다행히도 주차공간이 남아있어서 주차 후 처음 촬영한 사진입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별관 주차장은 약 20여 대 주차가 가능한 규모였습니다.
멀리 보이는 빨간색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으며 주차장 이용료는 없었습니다.
다른 분 글 검색해서 알게 된 주차장인데 주말이라서인지 주차라인이 아닌 곳까지 가득 차 있었습니다.
주변 식당가, 카페 등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유동인구도 많았고 조금 혼잡하게 느껴졌네요. 차라리 여기보다는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진입하는 길가(?)에 조성되어 있는 주차공간을 이용하는게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별관과 주변의 모습입니다.
목포 여행 검색하면 자주 나오는 사진관과 식당이 바로 옆에 위치해있습니다.
그리고 주차장 옆으로 여행자 쉼터와 안내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약간의 주차공간도 있지만
만 차였고 이 공간에서 이벤트가 진행되는 등 장시간 주차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종합안내입니다.
계획 없이 출발한 여행이라 우선은 종합안내의 모든 곳을 돌아보자란 단순한 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별관은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이었다고 합니다.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일본이 한국 경제를 침탈하기 위해 1908년에 설립한 특수 회사이다. 일본인의 이주 지원, 식민지 지주 육성, 농장 관리, 금융 등이 주요 업무였다. 서울에 본점을 두고 전국 주요 도시 9곳에 지점을 세웠다.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본래 나주에 있던 출장소를 1920년에 목포로 옮긴 것이며 건물은 1921년에 신축한 것이다. 해방 이후 이 건물은 대한민국의 해군 기지로 사용하였다. 1946년부터 1974년까지 '해군 목포 경비부'로, 1974년부터 1989년까지는 '해군 제3 해역 사령부 헌병대'로 사용하였다. 이후 헌병대가 영암군으로 이전해 감에 따라 1999년까지 약 10년간 빈 건물로 방치하여 철거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근대 문화유산으로 보존해 달라는 시만 사회와 학계의 요구에 따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하였다. 이후 내부 보수를 거쳐 2006년도부터 근대 역사관(현재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목포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일제 강점기 건축물로 식민지 수탈의 상징 공간이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해군의 역사가 담긴 국방 유적의 가치를 함께 지니고 있다. 건물의 외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당시 사용된 대형 금고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전라남도 기념물 제174호(지정일 1999. 11.20.) ]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로 더 유명만 목포 근대역사관입니다.
멀리 보이는 빨간색 벽돌 건물이 목포 근대역사관입니다.
주변에서는 5·18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평화의 소녀상에는 태극기가 감싸져있었습니다.
목포 근대역사관(구 목포 일본 영사관)입니다.
"구 목포 일본 영사관 건물은 목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일본이 지은 영사관 건물이다. 1900년에 건립하였다. 유달산 노적봉 아래 자락, 평지보다 조금 높아 목포항을 내려다보기 좋은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은 2층 구조로 높이가 13m이고 돌출한 출입구를 기준으로 좌우가 대칭인 장방형 형태이다. 외벽에 붉은 벽돌을 주로 사용하고, 곳곳에 적절하게 희색 벽돌을 첨가하여 건물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수직형 창틀 위에는 일본 국기를 연상하게 하는 원형 장식이 있다. 건물 2층 중앙 창틀에는 일본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모되어 없어졌다. 1층과 2층 사이에는 벽돌로 허리 돌림띠를 두어 층간의 구별을 명확하게 했다. 건물 내부에 벽난로가 8개 있는 것이 특징인데, 특히 2층 중앙의 벽난로는 건립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한일 관계의 변화에 따라 1905년 이후에는 이사청, 1910년부터는 목포 부청으로 사용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목포 시청, 1974년부터 목포 시립 도서관, 1990년부터 목포 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내부 보수를 거쳐 2014년부터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 목포 일본 영사관 건물은 목포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다. 건립 당시의 외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한 역사적 의미를 인정하여 1981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 사적 제289호(지정일 1981. 09. 25) ]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더 재미있는 공간일 것 같습니다.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지만
건물 자체는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근대역사관에서 바라본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모습입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897년 목포가 국제 무역항으로 개항하면서 외국인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설치한 각국 거루지 지역이다. 조선 시대 군사시설인 목포진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주변 해안가를 간척하여 근대 시가지를 형성하였다. 지금도 당시의 바둑판식 도로 구조와 근대 건축물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공간이다. 개항 당시 목포 각국 거류지이 총면적은 726,024㎡(약 22만 평)인데, 이 중 핵심에 해당하는 지역을 등록문화재 718호로 등록하였다. 이 공간은 과거 일본인들이 다니던 소학교 일대에서 목포역방향으로 이어진 대표 도로를 중심에 놓고, 유달산 · 목포진 · 선창을 연결하는 구조이다, 이 일대에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한 구 일본 영사관을 비롯하여, 경제 수탈의 상징인 구 동양 척식 회사 건물, 일본인들이 다녔던 학교와 교회, 일본식 민가,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 등이 밀집해 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식민지 수탈의 아픔을 기억하는 공간이자 부두 노동 운동 · 소작 쟁의 · 의병 · 항일 운동 등 민족의 저항 역사가 함께 숨 쉬는 곳이다. 또한 해방 이후 항구 도시 목포 사람들의 삶의 중심 터전이기도 하다." [ 등록문화재 제718호 ]
목포 근대역사관 관람료입니다.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지만 생활 속 거리두기 기간이라 실내 활동은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실내 모습은 다음에 촬영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주변을 살펴봤습니다.
건물을 바라보고 우측면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좌측면은 사진과 같은 모습입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뒤편의 방공호는 태평양 전쟁 시기 공중폭격에 대비하여 피난 장소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국인을 강제동원하여 만든
인공동굴입니다. 유달산 밑의 방공호는 일제 말기인 1944년에서 194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유달산에 주둔하던 일본군 150
사단의 사령부가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키 181cm인 제가 약간은 구부정하게 걸어야 하는 정도의 높이였으며
길이는 총 연장 85m, 밖으로 통하는 문은 3개가 있다고 합니다.
측면에서 바라본 목포 근대역사관의 모습입니다. 구 목포 일본 영사관 건물은 목포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건립 당시의 외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함께 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건물입니다. 2014년부터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 매력적인 건물이 앞으로도 잘 보존되길 기원하면서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호텔 델루나 촬영지라는 표지판 가장 크게 보입니다.
목포 근대역사관에서 내려와서 횡단보도를 건넌 후
같은 방향의 골목으로 한블럭 내려오면
사슴수퍼마켙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슴수퍼마켙은 사진의 설명과 같이
1897 개항문화 거리의 지역 주민과 청년, 예술가 등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와 교류 · 협업할 수 있는 열진 전시 공간이라고 합니다.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 주택-1]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 주택-1은 일제 강점기에 가장 번화했던 중심 지역(본정, 현 대의동)의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건물이다. 구 일본 영사관 건물과 동양 척식 주식회사 건물로 연결되는 지점에 있다. 건축 연도는 1935년으로 등록되어 있다. 1918년부터 1925년까지 이곳에 당시 일본의 신흥 종교인 천리교의 목포 선교소가 있었다. 이 건물은 상가와 주택이 결합한 일본식 점포 주택인 '마치야'형식이다. 1층은 상업 공간이고 2층은 주택으로 사용이 가능한 구조이다. 교차로에 자리한 입지 조건에 맞춰 건물 모서리 벽면 부분이 사선으로 처리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가게에서는 일본 나막신을 판매했다고 한다. 최근까지 슈퍼마켓으로 사용하였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7호]
사슴수퍼마켙에서 내려왔던 방향으로 한블럭 더 내려왔습니다.
주변에 눈에 띄는 건물들을 촬영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이쪽 방향이 아닌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오래전에 군대에서 배웠던 독도법의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며 우선 주변의 주요 지형지물(?)을 찾아 이동했습니다.
건물 사진을 찍었는데 고양이도 찍혀있네요.^^
주요 지형지물(?)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촬영한 사진들인데요~
횡단보도가 없는 골목길이라 생각했는데 버스가 지나가는 대로(大路)였습니다??!!
첫 번째 주요 지형지물이었던 목포여자중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주요 지형지물이자 목적지였던 목포 유달 초등학교가 보입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출입 금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어서
교문 밖에서 운동장의 전경을 촬영해봤습니다.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학교의 배경이 되는 저 마을이 제가 두 번째로 방문한 유명한 동네였습니다??!!
초등학교 앞에는 다행히도 인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유달 초등학교 앞에서 바라본 목포 여자중학교의 모습입니다.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 앞에 문방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학교에서 수업에 사용되는 물품(?)을 거의 모두 지급해서인지 학교 앞의 문구점은 없어졌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겨운 모습이라 촬영해봤습니다.
유달 초등학교 후문 앞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태권도 회원 모집 간판 옆의 건물이 제가 찾아 헤매던..??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1'입니다.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1은 1897년 목포 개항 이후 일본인의 자녀가 다니던 소학교 입구 쪽에 자리한 일본식 주택이다. 건축 대장의 등록 연도는 1935년이다. 대마도 출신 상인으로 1897년 개항 이후 목포 일본인 상업 회의소 회장을 지내며 활동한 일본 상인 후쿠다유조의 집안에서 1920년에 설립하여 운영했던 '후쿠다 농업 주식회사'의 소유였다. 이 건물은 후쿠다 농업 주식회사 직원들의 사택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로변에 세워져 안쪽에 마당이 있는 구조이며, 1층인 저층부는 크고 2층은 작은 전형적인 일본식 민가 형태이다. 2층에는 왜돗자리(다다미)방과 일본 주택 고유의 붙박이형 가구 구조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1호]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3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3은 일본인이 다니던 소학교(현 유달 초등학교)에서 구 동양 척식 주식회사 방향으로 나 있는 도로변에 서 있는 일본식 주택이다. 건축 연도는 1935년이며, 최초 소유자는 석유를 주로 판매하며 목포에서 상업 회의소 임원으로 활동한 일본 상인 히라오카 도라지로이다. 이 주택은 전면부 우측에 출입문을 두고 지붕 왼쪽 부분에 돌출형 2층 공간을 마련하여 안정감 있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1층 왼쪽 창문 위로는 햇빛이 직접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가림막을 별도로 설치해 놓았다. 건물의 형태가 독특하여 1994년에 상영한 한국 영화 '헐리웃 키드의 생애'의 촬영지로 활용한 바 있다. 원래는 이와 유사한 주택이 왼쪽으로 여러 채가 나란히 있었는데 현재는 이 집만 남아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3호]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2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들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1, 2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다음에 방문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해집니다.
목포 번화로 일본식 가옥들 바로 옆에 위치한 '목포 영산로 일본식 가옥'입니다.
"목포 영산로 일본식 가옥은 개항 후 일본인 자녀가 다녔던 소학교(현 유달 초등학교)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식 주택이다. 일본인 미곡상 우치다니 만페이의 저택(현 이훈동 정원)과 이어지는 도로변의 모서리에 있다. 1937년에 신축하였으며, 원 소유자 이름은 '미야자키 히사가즈로'이다. 집 위에 또 집이 올려진 상층 돌출형의 2층 구조로 주변의 유사한 읿노식 주택 중 구모가 가장 크다. 1층과 2층의 지붕 형태가 각기 다른 형태로 꾸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2층에는 넓은 창문을 두어 주변을 조망하기 좋게 만들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4호]
목포 영산로 일본식 가옥 맞은편, 목포 유달 초등학교 후문에 위치해 있는 '구 목포 공립심상소학교 강당'입니다.
외부에 문화재 표시가 없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사진의 문화재 안내가 보여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구 목포 공립심상소학교 강당은 목포 개항 이후에 이주해 온 일본인이 자녀 교육을 위해 세운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의 강당이다. 목포 공립 심상소학교는 1898년 목포에 진출한 일본 사찰인 동본원사가 주도하여 처음 설립하였고, 1899년 현 위치로 이전하여 자리를 잡았다. 이 건물은 1929년에 건립하였으며, 1층은 교실, 2층은 강당으로 이용하였다. 해방 후에는 이 강당에서 예향 목포의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를 개최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길쭉한 장방형이고 주 입구를 긴 쪽의 중앙에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복도 끝에 2층으로 연결되는 목조 계단이 있다. 건물 외벽의 정면과 좌측면을 타일로 마감하고, 건물 하단부가 구분되게 석재를 별도로 사용하여 건축미를 더했다. 이 건물은 목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초등 교육 관련 건축물로 가치가 있으며 근대 강당 건축 양식을 살릴 수 있는 자료이다."
[등록문화재 제30호(지정일 2002.05.31.)]
다음 목적지인 '구 목포 부립병원 관사'와 '구 목포 일본 기독교회'를 찾아가기 위해 큰길가로 나왔습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진입할 때 사용하는 비교적 넓은 도로인데 양쪽 모두 인도가 없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본 건물입니다. 2층 출입구가 건물 중앙에 위치해 있고
양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외부로 노출된 계단 등은 마치 어느 영화에서 본듯한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건물 옆에는 문화재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면 창고라고 생각하고 지나쳤을듯한 모습의
'구 목포 일본 기독교회'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구 목포 일본 기독 교회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다니던 교회 건물이다. 1922년에 건립했고 1927년 6월에 증축했다. 원래는 2층 형태의 석조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2층 부위가 절개되어 단층만 남아 있다. 건물 출입구가 잇는 중앙부를 약간 앞으로 튀어나오게 만들고 출입구의 좌우 벽면에 창문을 두었다. 정면 출입구 상부에 석조 현판이 있는데, 지금도 목포 일본 기독 교회라는 글자를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전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일본인 교회 건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인 윤치호와 결혼 후 평생을 목포 공생원에서 고아들을 보살핀 일본인 윤학자(다우치 지즈코)여사가 다닌 교회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6호]
구 목포 일본 기독 교회에서 조금 내려오니 이쁜 외관의 카페가 보여서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가 구 목포 부립 병원 관사였네요.^^;;
"구 목포 부립 병원 관사는 구 동양 척식 주식회사 목포 지점과 대각으로 마주 보는 위치에 서 있는 일본식 고급 주택이다. 건축 연도는 1935년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구전으로는 1920년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집의 최초 소유자는 목포 해운 회사, 조선 제유 회사, 태평양조, 목포 소주 판매 회사 등에 참여했고, 전남 비료 회사의 대표를 지낸 일노 상인 '모리타 센스케'이다. 이 집은 이 주택의 맞은편에 있던 목포 부립 병원의 관사로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다. 해방 후에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 건물이 해군기지가 되면서 해군 관사로 사용하다가 개인 소유가 되었다. 1966년부터는 나상수의 주택이 되었다. 일본 기와로 된 복잡한 지붕 구조가 특징이며, 내부 마당에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다. 2006년에 내부 수리를 한 후에 일본식 주택 구조를 활용한 이색적인 상업 시설로 용도를 바꾸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5호]
구 목포 부립 병원 관사에서 대각선 방향의 건너편에는 처음 도착해서 주차한 목포근대역사관 별관이 위치해있습니다.
참 멀리 돌아서 다시 처음 출발지로 왔는데 아직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반정도 밖에 못 돌아봤습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나머지 반을 위해서 바로 출발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슴수퍼마켙의 우측 방향으로 내려갔는데
이번에는 좌측 방향의 골목으로 이동했습니다.
정겨운 느낌의 목욕탕 건물을 지나
나타난 사거리에서 멋진 나무를 발견하고 우측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멋진 나무 아래에는 주민분들이 쉴 수 있는 쉼터가 있었고
현대적인 외관의 식당과 상당히 큰 규모의 교회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무 주변의 인상적인 건물들 사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대기줄이 긴 식당도 보이네요??!!
검색해보니 이곳에서 아주 유명한 맛집이었습니다.
나무만 보고 이동한 곳인데 종합안내의 설명에 나와있었던 '목포진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7호
목포진지 (木浦鎭址)
목포진지 입구에서 촬영한 주변의 모습입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근대시대의 건축물을 담는 거라 목포진지는 다음을 기약하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나무에 이끌려 우회전했던 사거리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우회전해서 다시 원래 방향으로 이동을 계속했습니다.
이동하는데 문뜩 위의 조명 갓(?)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서 어떠한 이정표도 찾지 못했는데 혹시 주 · 야간 모두 표시가 가능한 이 조명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지저분하게(?) 설치되어 있는 조명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근대 역사문화공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거리의 모습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주변 사진을 찍으면서 이동하다 이곳을 그냥 지나칠뻔했습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찾기 힘든 곳들이네요.^^;;
"구 동아 부인 상회 목포 지점은 일제 강점기 상업 시설이 밀집한 지역에 세워진 상점이다. 이 건물은 전면보다 내부가 약 3배 정도 길쭉한 형태의 구조이다. 원래는 1층은 상가, 2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지어진 주상 복합 건물이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나무 계단이 보존되어 있고, 안쪽에 작은 마당이 있다. 왼쪽 건물과 두꺼운 석고 방화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도 건물 외관과 내부 목재 구조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애초에 이 건물은 잡화 판매와 화재 보험 대리점을 겸한 '하타노 상점'이었다. 최초 소유자인 일본 상인 '하타노 류스케'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31년 이후부터는 동아 부인 상회 목포 지점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동아 부인 상회는 생활용품을 판매하기 위해 1920년에 설립하였는데, 여성들이 주측이 되어 운영한 최초의 근대적 사업이었다. 1397년 신문에 '목포의 대백화점'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크게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운영자는 '정남룡'이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주상 복합 건물 형태의 상업 거리의 흔적을 보여주는 점,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한 최초의 장소라는 점 등에 가치가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11호]
구 동아 부인 상회 목포 지점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 주택-2입니다.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 주택-2는 일제 강점기 목포 상업의 중심 지역에 세운 주상 복합 건물이다. 이 건물은 당시 복산정과 행정이 교차하는 사거리의 도로변에 있었는데 복산정(현 복만동)에 속했다. 이 건물의 최초 소유자는 전남 비료 합명 회사, 목포 소주 판매 회사, 모리타 상점 등을 운영한 일본 상인 '모리타 센스케'인데, 과자점 등으로 이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건물은 도로에 접한 정면 부분이 좁고, 안쪽이 더 길게 지어진 2층 목조 건물이다. 건물의 왼편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석조 방화벽이 있다. 지금도 나무 계단과 2층 주택부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도 나무 계단과 2층 주택부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안쪽에 작은 마당과 우물이 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주상 복합 건물 기능을 형성한 상업 거리의 흔적, 역사성, 장소성을 보여 주는 상가 건물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12호]
추억의 이름이 보여서 찍어봤습니다.
어렸을 때 들어본 이름인데 아직도 있었네요??!!
부라더미싱 건너편에 위치한 '목포 번화로 일본식 상가주택-3'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목포지역 지도자 안철 장로가 운영하던 동아약국 건물로도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장소에서 이정표가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구 목포 화신 연쇄점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구 목포 화신 연쇄점은 일제 강점기 목포에서 가장 번화한 '긴자 사거리'에 있었던 건물이다. 붉은 벽돌을 이용했으며, 전면부를 교차로와 어울리게 곡선 형태로 만들었다. 내부는 상품 진영이 쉽고 넓은 개방형 공간으로 만들고, 곳곳에 기둥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읿노 가고시마현 출신으로 1898년 일본 영사관 소속 경찰로 목포에 들어온 후 상인으로 변모한 마루오카 다수쿠치로가 일제 강점기인 1932년에 지어서 총포 화약 · 서양식 가구 등을 수입해서 파는 상점을 운영했다. 그러다가 한국인 서병재가 소유권을 인수하여 1935년부터 1938년까지 목포 화신 연쇄점으로 사용하였다. 서병재의 동생이자 목포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서병인이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연쇄점의 운영에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1층은 서양품 · 공예품 · 화장품 판매점, 2층은 문방구 · 가구 · 악기 판매점, 옥상에 위치한 3층은 식당과 양복 판매점이었다. 목포 화신 연쇄점은 독립적인 규모를 갖춘 한국인 백화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발간한 호남평론에 여러분의 백화점이라는 표현이 담긴 광고가 남아 있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이 건물은 이후에 1938년부터는 조선 신탁 주식회사, 1941년부터는 조선 운송 주식회사, 1972년부터는 대한 통운 목포 지점으로 사용하였다. 현존하는 목포의 근대 상점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외관도 화려하다." [국가등록문화재 제718-15호]
이 건물에 너무 정신이 팔려서 바로 대각선 뒤편에 위치해 있었던 '목포 해안로 붉은 벽돌 창고'는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ㅎㅎㅎ
구 목포 화신 연쇄점 옆에는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이 있습니다.
"호남은행은 민족 자본 육성을 위해 현준호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1920년에 설립한 은행이다. 일제의 식민지 금융 정책에 맞서 독자적으로 운영을 하다가 1942년에 동일은행과 강제로 통합되었고 이후 조흥은행으로 명맥이 이어졌다. 구 호남은행 목포지점은 목포 상권의 중심인 오거리에 세운 호남은행 목포지점 건물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11월 11일에 신축한 것이다. 2층으로 된 사각형 모양의 벽돌 건물로 표면에 붉은색 타일을 붙여 멋스러움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1897년 개항 이후 상업 도시로 성장한 목포에는 근대 금융 건축물이 많이 생겼는데, 현재는 이 건물만이 유일하게ㅐ 남아 있다. 한국인이 설립하고 운영한 민족 은행이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근대 문화유산이다."
[등록문화재 제29호(등록일 2002. 05. 31.)]
오늘 길에 놓친 등록문화재 8, 9번을 찾기 위해
대로변으로 돌아서 왔던 방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특색 있는 건물들을 촬영해봤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장소 중 한 곳이었던 창성장입니다.
창성장은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폐가였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게스트 하우스로 오픈했다고 합니다.
다음에 가족과 다시 오게 된다면 하루 묵어가고 싶은 곳입니다.
https://blog.naver.com/mokpocasa1
목포 창성장 주변의 모습들입니다.
좌측의 빨간색 간판 건물이 등록문화재 '목포 해안로 일본식 상가주택'입니다.
그리고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던 '목포 해안로 교차로 상가주택'은 사진으로 담지 못했습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의 주요 문화재와 등록문화재 중 '목포 부두 근대상가주택'을 제외하고 모두 돌아봤습니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을 돌아보는 건 여기까지 만족하고
처음 출발했던 주차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보존 가치가 높은 근대 건축물 등 100여 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만호동 일대 11만 4038㎡를 2018년 8월에 전국 최초로 공간(면) 단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까지 5년간 등록 문화재 발굴과 활용, 경관 정비가 진행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다녀온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아직은.. 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좋은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되길 기원하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근대 시대의 건축물 촬영을 좋아하는 전 앞으로 군산과 목포를 묶어서 자주 방문할 것 같습니다.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재생되는지 사진으로 기록해 보고 싶네요!!
그리고 이 벤치에 앉아서 다음 여행 코스를 즉석에서 결정하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상으로 "혼자만의 목포 여행 1.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편"을 마칩니다.
그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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